“당신이 가진 것 중 일부를 나누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 존 데이비슨 록펠러 (John D. Rockefeller)
출생과 성장
1839년 7월 8일, 미국 **뉴욕주 리치퍼드(Richford)**에서 태어난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순회 판매원이었던 아버지와 신앙심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정 형편은 넉넉지 않았고, 1853년 가족을 따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로 이주하면서 그의 인생은 본격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16세에 회계 사무실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돈과 숫자에 대한 감각을 키워나갔습니다.
스탠더드 오일 창립 – 세계 석유 산업의 지각변동
1870년, 록펠러는 석유 정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설립합니다.
그의 경영 방식은 효율적이고도 철저했습니다. 정유 과정의 혁신, 수직 계열화, 경쟁자 인수 등을 통해 미국 석유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후 스탠더드 오일은 기업 독점 논란으로 해체되지만, 그 자회사들이 오늘날의 엑슨모빌(ExxonMobil), 셰브론(Chevron)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역대 최고 부자
록펠러는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인물로 기록됩니다.
▶️ 포브스가 선정한 역대 부자 순위 1위
▶️ 추정 순자산은 3183억 달러 (한화 약 418조 원)
▶️ 물가 기준 환산 시 최대 **4090억 달러(약 498조 원)**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이 재산은 단순히 ‘부자’라는 수식어를 넘어, 경제 구조를 바꾼 자본가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신앙과 자선 – 침례교 신자에서 인류의 기부왕으로
존 록펠러는 독실한 침례교 신자로, 사업 초기부터 수입의 10%를 꾸준히 헌금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기부자에 그치지 않고, 과학, 의학, 교육,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체계적인 자선 활동을 펼쳤습니다.
시카고대학, 록펠러 재단, 록펠러 의학연구소 등 지금도 운영되는 여러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말년에 이르러선 자신의 재산 중 5억 달러 이상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가정과 후손
그는 아내 로라 스펠먼과의 사이에서 5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 중 아들인 **존 D. 록펠러 주니어(John D. Rockefeller Jr.)**는 유산을 이어받아 록펠러 센터를 개발하고 UN 본부 부지를 기부하는 등 굵직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록펠러 가문은 지금도 미국 정치·경제·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죽음과 유산
1937년 5월 23일, 플로리다주 오몬드비치에서 97세의 나이로 별세한 록펠러는
근대 자본주의의 아이콘이자, 근대 자선의 창시자로 기억됩니다.
그는 단순한 부자 그 이상의 인물이었습니다.
가난한 소년에서 세계를 움직인 거부가 되기까지, 그의 삶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비전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존 D. 록펠러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돈을 다루는 철학, 성공을 이루는 전략, 부를 나누는 태도를 세상에 남긴 인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가 설립한 기관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고, 그의 이름은 전설이 되어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부는 축복이다. 그러나 그 축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선택이다.”
– 존 록펠러